사진은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읍에 있던 운산금광과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1896년(조선 고종 33)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조선은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에 의해 경제적으로 많은 이권을 침탈당하였다. 초기에 청과 일본은 주로 연해 운항권 및 어업권 등을 침탈하였고, 점차 일본,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이 철도부설권과 광산채굴권 등을 가져갔다. 특히 일본은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미국인 모오스(James R. Morse)로부터 사들였고, 차례로 경부선, 경의선을 개통하여 주요 간선 철도를 장악하면서 경제 침탈뿐만 아니라 군사 침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을 전후한 시점에 조선 정부는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미국 공사관에 있던 알렌(H. N. Allen)은 조선의 재정난 극복을 위해 평안도, 함경도 일대의 광산을 담보로 미국에서 차관을 얻을 것을 고종에게 조언하였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알렌은 미국이 광산 채굴권을 얻게 하기 위해 외교관 신분이었던 자기 대신, 아메리카 트레이딩사 사장인 모오스를 교섭 상대로 내세워 결국 채굴권을 획득케 하였다.
모오스는 1895년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자본금 10만 달러를 들여 조선 개광 회사를 설립하였고, 2년 뒤에는 알렌이 끌어들인 미국의 사업가 헌트가 동양합동광업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금광개발이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은 25년간 28억 평의 광구에 대한 독점적 채굴권을 부여 받았다. 뿐만 아니라 설비와 자재에 대한 무관세 통관과 법인세, 소득세 등 일체의 세금도 면제받았다. 그 대가로 대한제국 황실은 생산량에 상관없이 매년 1만 2천달러(2만 5000원)를 상납 받았다. 정확한 생산량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매년 300만 달러 이상의 금이 생산됐을 것으로 추정할 때, 황실이 상납 받은 금액은 터무니없는 금액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단돈 1달러의 세금조차도 내지 않았던 것이다. 동양합동광업 주식회사는 193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되자, 1939년 800만 달러에 운산 금광을 일본에게 양도하였다.
이러한 열강들의 이권 침탈은 조선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하였지만 외국인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었고,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 문제도 심각했다. 조선은 이와 같은 열강의 이권 침탈을 알면서도 자본과 기술이 부족하고 힘이 약했던 탓에 무능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