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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중국 여행

중국고대역사



삼황 오제



삼황 

이름

년도 

내용 

 복희

태호 

BC 2800~2514 

 태호 복희씨(太皞伏羲氏) 또는 포희씨(庖犧氏)는 중국 삼황 중 하나이다. 전설에서 복희는 인류에게 닥친 대홍수 시절에 표주박 속에 들어가 있던 덕분에 되살이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로 복희라고 했다고 전한다.[1] ‘복희’란 희생(제사에 쓰이는 짐승)을 길러 붙여진 이름이다. 성씨는 풍(風)으로 전해진다.전설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기원전 2800년 무렵에 살았다고 전한다. 그는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다고 하며, 다른 전설에는 용의 몸 이라고도 한다.

원래 민간 전설상으로는 태호와 복희는 별개의 인물이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에서 편찬한 세본(世本)에서 동일 인물로 서술하자, 이후 황조 이후부터 동일인으로 서술 하기 시작하였다. 이름이 두 개이고, 본래 동일인이 아니라는 기록이 존재하므로 실존성은 낮은 신화적인 상징이라고 해석이 하기도 한다.

태호 복희는 여와처럼 고대 민간 신앙의 신화일 뿐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복희 상상도가 출토된 신장의 경우 본래 한족 지역이 아니며, 한족 이외에 남방 소수 민족들도 복희 신화를 가지고 있어, 고대 씨족 사회에 널리 사용된 민간 신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당나라 시대 간행된 역경에 따르면 복희가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복희가 살았다는 기원전 25세기의 문자나 기호가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팔괘는 주나라 초기 점술가들이 제안하였고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여러 신앙 풍습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여, 사서의 내용들과는 실제로는 다른 면도 있다. 글자를 만들었다고 믿어지기도 하지만, 역시 복희가 살았던 시대의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100년 이상 살았다고 전해진다. 무덤은 화이양 현 북쪽 3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다른 전설 시대에 나오는 인물 무덤처럼 실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신농

염제 

 

 염제(炎帝)는 신농(神農)으로 남방상제이다. 그의 현손(玄孫)이자 불의 신(火神)인 축융이 보좌했다. 농업과 의약의 신. 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 일설에 의하면 본래 황제(黃帝)와 배다른 형제인데, 각기 천하를 반씩 나누어 다스렸다고 한다. 그 뒤 황제는 어진 정치를 펼쳤으나 염제가 따르지 않아 후에 탁록( 鹿)의 들판에서 서로 한바탕 싸우게 되었다고 한다. 해의 위치에 따라 시장을 열었다.


염제는 염제국의 군주이다. 중국사람들은 신농과 그의 8세손 유망(楡罔)을 구별하지 않고 그냥 염제 신농(炎帝 神農)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신농이라고 할 때는 시조 신농을 의미할 때가 많다신농 (神農)은 중국 삼황의 하나로 흔히 '염제(炎帝) 신농'으로 불린다. 신농은 고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삼황 중 두 번째 황제이며 정식 이름은 염제 BC28세기에 인신우두(人身牛頭)의 형상을 하고 태어났다고 해진다.염제는 이 식물에 자기 성씨를 붙여주고 생강(生姜)이라고 명명(命名)하였다. 생(生) 자(字)를 강(姜) 자(字) 앞에 붙인 이유는 이 식물의 뿌리로 부터 자기의 제 2 차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와 

 

 

 (중국어 정체: 女媧)는 중국 신화에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알려진 여신이다. 복희와 남매로 구전된다. 뱀모양의 복회와 여와가 서로의 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 화상석(畵像石) 등에 새겨져 있다. 여와(女媧)라는 단어는 여성 여신(女神)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태고 하늘에 4개의 기둥이 부러지자, 대지는 갈라지고 화재와 홍수가 발생했다. 맹수와 괴조(怪鳥)가 횡행하여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이때 여와가 5색으로 빛나는 돌을 녹여 하늘의 구멍 뚫린 부분을 메웠다고 서술되어 있다.

풍속통의(風俗通義)에는 여와가 황토로 사람을 만들고, 결혼 제도를 만든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와의 사당에 가서 빌면 결혼도 할 수 있고 자식도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부족 사회를 이루고서 살고 있었고, 여성의 비중이 컸다. 여와 신화는 이러한 모계 사회를 대변한다고 한다.

복희여와도는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남신인 복희와 여신인 여와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한(漢) 나라 때의 돌에 새긴 그림, 당(唐) 나라 때의 채색한 비단 그림, 아스타나 무덤에서 발견된다. 복희와 여와는 상반신은 사람 모습을 하고, 각각 손에는 창조의 상징물인 구부러진 자(曲尺)와 컴퍼스를 들고 있다. 몸을 꼬고 있는 모습은 세상의 조화와 만물의 생성이 초래됨을 나타내고 있다.

남신 복희와 여신 여와의 모티프는 인도나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복희, 여와라는 테마가 중국이 아닌 남방 문화에 의해 형성되어 중국으로 전래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중국의 소수 민족들도 여와을 신으로 모시는 풍습이 있다. 투르판 아스타나(阿斯塔那)의 묘실 천정에 부착되어 있었던 복희 여와도는 중국 내륙에서도 출토 예가 없다.

복희와 여와의 이야기는 세계 곳곳의 인간 탄생 신화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와가 흙으로 사람을 빚어낸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강물에 흙을 반죽해 사람을 만들었다는 내용, 성경에서 하나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코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었다고 한 내용과 닮아 있다. 홍수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데우칼리온 부부 이야기, 성경에서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닮아 있다. 여와 신화는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신화로 이해되고 있다.


염제국의 계보